우리나라 성인 3명 중 1명이 고혈압 환자다. 대한고혈압학회에 따르면 국내 고혈압 유병 인구는 약 1,200만 명에 달하고, 이 중 절반가량이 자신이 고혈압인지 모르고 지낸다. 고혈압은 대부분 증상이 없어 ‘침묵의 살인자’라 불리지만, 뇌졸중·심근경색·신부전 같은 심각한 합병증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이다.
고혈압 진단 기준과 단계
혈압은 수축기 혈압(심장이 수축할 때)과 이완기 혈압(심장이 이완할 때)으로 표시한다. 정상 혈압은 수축기 120 미만, 이완기 80 미만이다. 수축기 120~129이고 이완기 80 미만이면 상승 혈압(주의 단계)으로 분류되고, 수축기 130 이상 또는 이완기 80 이상이면 고혈압으로 진단한다. 고혈압은 다시 1기(수축기 130~139 또는 이완기 80~89)와 2기(수축기 140 이상 또는 이완기 90 이상)로 나뉜다. 한 번 측정한 수치만으로 진단하지 않으며, 최소 2회 이상 다른 날에 측정해 일관되게 높게 나올 때 진단한다.
가정 혈압 측정의 중요성
병원에서 측정한 혈압이 높게 나오는 ‘백의 고혈압’(의사 앞에서 긴장해 혈압이 올라가는 현상)이 있는 반면, 집에서는 높은데 병원에서는 정상으로 나오는 ‘가면 고혈압’도 있다. 따라서 가정에서 정기적으로 혈압을 측정하는 게 정확한 진단과 관리에 필수다. 올바른 가정 혈압 측정법은 다음과 같다. 측정 30분 전에는 흡연·카페인 섭취·격렬한 운동을 피해야 한다. 등받이 있는 의자에 앉아 5분간 안정을 취한 후 측정한다. 혈압계 커프는 심장 높이에 맞춰 팔뚝에 올바르게 착용한다. 아침 기상 후 1시간 이내(식전, 약 복용 전)와 저녁 취침 전에 각각 측정하는 게 권장된다.
약 없이 혈압을 낮추는 생활 습관
1기 고혈압이거나 상승 혈압 단계라면 생활 습관 개선만으로 혈압을 정상화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식이 조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트륨 섭취 줄이기다. 세계보건기구 권장량은 하루 2,000mg(소금 5g)인데 한국인 평균 섭취량은 이보다 훨씬 많다. 국물 음식을 줄이고, 가공식품과 외식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칼륨이 풍부한 채소와 과일(바나나·고구마·시금치 등)은 나트륨 배출을 도와 혈압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유산소 운동은 혈압을 낮추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하루 30분, 주 5회 이상의 빠르게 걷기·자전거 타기·수영을 꾸준히 하면 수축기 혈압을 5~7mmHg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언제 약을 먹어야 하나
2기 고혈압(수축기 140 이상)이거나, 당뇨·심혈관 질환·만성 신질환이 동반된 경우라면 생활 습관 개선과 함께 약물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고혈압 약은 한번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 시작을 꺼리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혈압 조절이 안 된 상태로 오래 방치하면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위험이 수배로 높아진다. 의사의 처방에 따라 적절한 약을 복용하면서 생활 습관 개선을 병행하는 것이 합병증 예방의 가장 확실한 길이다.
약 없이 혈압 낮추는 식단 관리
고혈압 관리에서 식단은 약물 치료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 DASH 식단(Dietary Approaches to Stop Hypertension)은 과학적으로 혈압 강하 효과가 입증된 식이요법으로, 과일·채소·저지방 유제품·통곡물 위주에 나트륨을 하루 2,300mg(소금 약 6g) 이하로 제한한다. 칼륨은 나트륨의 배출을 돕는 미네랄로, 바나나·감자·시금치·토마토에 풍부하다. 하루 칼륨 섭취를 3,500~4,700mg으로 유지하면 수축기 혈압이 4~5mmHg 낮아질 수 있다. 마그네슘이 풍부한 견과류·씨앗·다크초콜릿도 혈관 이완에 도움이 된다. 카페인은 일시적으로 혈압을 올리지만 습관적 음용자에게는 영향이 적으며, 하루 2~3잔 정도는 무방하다. 알코올은 하루 남성 2잔, 여성 1잔 이하로 제한해야 하며, 과음은 혈압을 직접적으로 상승시킨다.
고혈압 환자의 운동 가이드
규칙적인 운동은 수축기 혈압을 5~8mmHg 낮추는 효과가 있어, 경증 고혈압은 운동만으로도 약물 없이 관리할 수 있다. 걷기·조깅·자전거·수영 같은 유산소 운동을 주 5일 이상, 하루 30분 이상 실시한다. 근력 운동도 혈압 강하에 도움이 되며, 주 2~3회 가벼운 중량으로 12~15회 반복하는 것이 적당하다. 단, 무거운 중량을 들면서 숨을 참는 발살바 호흡은 혈압을 급격히 올릴 수 있어 피해야 한다. 운동 전 혈압이 180/110mmHg 이상이면 운동을 중단하고 먼저 약물로 혈압을 조절한 후 운동을 시작한다. 겨울철에는 추운 새벽 운동을 피하고, 충분한 준비운동으로 혈관의 급격한 수축을 방지해야 한다.
독자들이 많이 물어본 것
Q. 고혈압 약을 한번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하나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경증 고혈압의 경우 체중 감량·운동·식단 개선으로 혈압이 정상화되면 의사와 상의해 약을 줄이거나 중단할 수 있다. 다만 임의로 약을 끊으면 혈압이 반동성으로 급상승해 위험할 수 있으니, 반드시 의사 지도 하에 감량해야 한다. 미국심장협회(AHA)도 비약물 관리 6개월 이후 약 감량 시도를 권고한다.
Q. 혈압은 언제 재는 것이 가장 정확한가요?
아침 기상 후 소변을 본 뒤, 식사와 카페인 섭취 전 5분간 안정을 취한 후 측정하는 게 가장 정확하다. 양쪽 팔에서 각각 2회씩 측정해 평균값을 기록하며, 매일 같은 시간에 측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정용 혈압계는 팔뚝형(커프형)이 손목형보다 정확하다. 손목형은 측정 자세에 따라 오차가 10mmHg 이상 날 수 있다.
Q. 짜게 먹는 습관을 바꾸기 어려운데 방법이 있나요?
나트륨 섭취를 줄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국물 섭취를 줄이는 것이다. 한국인 나트륨 섭취의 약 40%가 국과 찌개에서 온다(식약처 2023 통계). 조리 시 소금 대신 레몬즙·식초·향신료로 맛을 내면 저염식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으며, 2~3주면 미각이 변해 덜 짠 음식에도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Q. 가공식품 영양표시에서 ‘저나트륨’ 표시는 어떤 기준인가요?
식약처 기준으로 ‘저나트륨’은 100g당 120mg 이하, ‘나트륨 무’는 5mg 이하다. ‘나트륨 줄임’ 표시는 같은 종류 일반 제품 대비 25% 이상 감소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라벨에서 1회 제공량 기준 나트륨이 200mg을 넘는다면 가공식품으로는 짠 편이라 보면 된다.
고혈압 환자가 주의해야 할 상황
고혈압 환자는 일상에서 혈압이 급격히 오를 수 있는 상황을 인지하고 대비해야 한다. 겨울철 새벽 운동은 차가운 공기로 혈관이 급격히 수축하면서 혈압이 치솟아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위험이 높아지니, 해가 뜬 후 운동하는 게 안전하다. 뜨거운 사우나나 찜질방 이용 시에도 혈관 확장과 수축이 반복돼 혈압 변동이 크니 주의가 필요하다. 변비로 힘을 주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 때도 혈압이 일시적으로 급상승할 수 있다. 감기약에 포함된 슈도에페드린 성분은 혈압을 올릴 수 있으니, 약국에서 고혈압 환자임을 반드시 알려야 한다.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혈압이 크게 오를 수 있어, 명상이나 심호흡 같은 이완 기법을 익혀두면 도움이 된다.
고혈압은 침묵의 살인자라 불릴 만큼 자각 증상이 거의 없지만, 꾸준한 관리로 심뇌혈관 합병증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건강한 식단과 규칙적인 운동, 스트레스 관리를 실천하면서 정기적으로 혈압을 측정해 본인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자.
고혈압 관리는 마라톤과 같다. 단기간의 노력보다 평생에 걸친 꾸준한 생활 습관이 중요하다. 오늘부터 저염식을 실천하고 30분 걷기를 시작하면, 혈압계 숫자가 변하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